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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광범위하고 영속적인 선물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7/11/23
400년 만에 들려온 선지자의 목소리 치고는 가슴이 벌렁거릴만한 임팩트가 없었다. 잔뜩 기대하고 애들까지 다 데리고 먼 길을 걸어 산에 올라왔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명연설은 들을 수가 없었다.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뜬구름 같은 천국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해방이었다. 아니, 그런 거창한 개념도 아니고 그저 일용할 양식과 메마른 자존심 한 조각이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천국이 있다 해도 돈과 힘을 가진 기득권자들의 전유물이 아닌가? 나의 비참한 현실은 하나님의 보호막에서조차 벗어난 잉여인간이라는 증명이 아닌가? ‘천국? 나하고 해당 없음!’ 가난과 애통, 강요된 온유와 주림은 이가 갈리도록 먹어온 약자의 양식이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목록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올리며 거기에다가 복이라는 개념을 연결하는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가슴을 울리기엔 딴 나라 말처럼 들렸다. 그 ‘가난’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가지고 신학적인 설왕설래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하물며 아무런 해설도 없이 툭 던져지는 선문답 같은 말씀에 무리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뭔 소리여?’ ‘먹을 건 언제 준대?’ 꿈을 상실한 무리들을 다시 꿈꾸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팔복의 첫 줄을 무사히 통과하지 않고는 그 다음 비밀의 정원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놀이동산 입구에서 손목에 채워주는 표식처럼 이어지는 영적 여행에서 성도는 수시로 이 말씀을 전면에 제시하게 된다. 세상이라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이 날선 가난은 스위스 만능 칼처럼 유용할 때가 많다. 불치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적은 양의 음식으로 터무니없이 많은 사람을 먹이시는 예수님은 현실의 해결사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시다.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인기의 포인트를 모르셨을 리가 없다. 온 백성의 열광을 불러일으키고 거기에다가 천군천사 일개중대만 불러 내리면 로마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한 주먹감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님은 무리들의 세속적 요구에서 항상 비켜서시며 시선을 보좌에 고정하셨다.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선물은 더 광범위하고 영속적인 것이었다.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당신이 아직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율법의 조르기를 피할 수 없다. 불시에 숨통을 조이고 가슴이 툭 떨어지게 만드는 은밀한 공격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살펴보라. 정체를 알아야 멱살을 잡든지 팔이라도 비틀 것 아닌가? 싸하게 밀려오는 공포감과 달랠 길이 없는 외로움은 당신이 구원의 필요 앞에 서있는 자임을 증명한다. 모든 것을 가진 자의 공허와 두려울 것이 없는 자의 불안은 세상의 심리학으로 설명이 안 된다. 세속적 인간들도 용어만 신학적이 아닐 뿐 천국을 갈망하고 있다. 다만 천국에 통째로 삼켜지는 것이 두려워서 내편에서 로그인과 로그아웃을 주도하며 거리를 둔다. 아무리 난관에 봉착해도 가급적 종교적 상태가 되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린다. 그러느라고 죽어나는 건 바로 당신이다.

죽는 날까지 계산서와 청구서가 날아온다. 율법은 우리를 빚쟁이로 몰아가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재촉을 한다. 정말 한 방에 모든 계산을 끝내고 싶다. 지금은 알 수 없는 미래의 채무까지 싹 지워주실 분 어디 없습니까?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의 이 한마디를 믿음으로 품는 순간 당신의 BC와 AD가 갈린다. 아임 프리! 이제 당신은 자유다. 아임 프리! 이제 모든 것은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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