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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갑자기 만나는 여백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7/09/28

누군가에게 고독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지만 누군가에게 고독은 오묘한 맛을 주는 기호품이다. 처음부터 그 맛을 포착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 마시는 커피를 바리스타처럼 즐길 수는 없으니까. 고독을 즐기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할 만한 학습과 내공이 필요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고독은 철저한 고립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소란스러움이다. 고독이 그냥 침묵과 격리만을 의미한다면 그것에 마음이 끌릴 인간은 없다. 한 쪽이 조용해짐으로써 상대적으로 깨어나는 한쪽이 있기 때문에 감히 고독에 다가가는 것이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은 대단히 영리하거나 대단히 이기적이다. 그러나 그 이기심은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다. 세상에 소음과 분진을 일으키는 사람은 대개 고독을 못 견디는 사람이다.

수직을 선택하는 일은 항상 수평을 포기하는 일을 동반한다. 성경 속으로 들어갈수록 나는 고독의 맛에 길들여진다. 세상을 겹겹이 뒤집어쓰고 온 자에게 하나님이 곁을 주시는 일은 없다. 에로틱하신 하나님은 나의 맨살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하나님의 터치를 받으려면 나는 고독이라는 영적 피부를 준비해야 한다. 은혜 안에서 맛보는 알싸한 고독감은 시원한 청결감으로 이어진다. 믿음은 나를 거룩한 이기주의자로 만들었고 마리아처럼 좋은 편을 택하는 일관성도 가르쳐주었다.

나의 가장 큰 희락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이다. 양과 질에서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나 나의 상상을 초월하고 놀라움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과 더 많이 닿기 원한다면 세상과의 접촉점을 줄여나가고 갑자기 만나는 여백을 반가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안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중에 최고지만 그 진가를 아는 자는 별로 없다. 안식의 포장을 뜯으려면 고독이라는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장소는 고독의 미학을 배우기에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주님과 단둘이 만나는 내 영혼의 성전이 별도로 필요하다. 나의 영적 직업은 카페 주인이다. 오직 한 분을 기다리며 차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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