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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감사하는 신앙이 더욱 좋다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7/08/28

내가 로또에 당첨되거나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거나 자식이 대단한 존재가 되어 세상의 부러움을 받아도 내 인생에 일어나는 본질적인 변화는 미미할 것이다. 집과 자동차와 세간들은 업그레이드가 될지 모르지만 정신과 영혼의 인테리어까지 업그레이드될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고 더 낮추어야 하고 더 정신을 차려야 하는 또 다른 부담이 생길지도 모른다. 안식과 평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면 돈 벼락이나 인기 벼락같은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바래야 마땅하다. 미친 세상에서 제정신을 찾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그런 것들로 인해 영혼의 균형이 다시 흔들린다면 결코 복이라고 부를 수 없다.

내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없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나는 작은 양이 되어 목자의 음성을 따라가면 그만이다. 양을 고깃덩이로 보는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르며 애지중지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나는 안다. 지금도 작은 천국에 살면서 모든 것이 충분하여 무엇을 더 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탐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도 욕심을 부려보겠지만 웬일인지 피조물에는 가슴이 뛰지 않는다. 감사의 제목은 많지만 간구의 제목은 많지 않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옛 이스라엘의 찬송은 지금 내 마음에도 딱 맞는다. 하나님을 나의 뜻에 맞추기보다 내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고요히 머물며 감사하는 신앙이 더욱 좋다.

인간은 행위와 업적에 끌리도록 치밀하게 세뇌 되어 왔다. 그 결과 생산성과 경쟁력은 신의 지위에 오르고 소유와 명성은 유사 예배 행위의 대상이 되었다. 미디어는 온갖 도토리 키 재기를 화젯거리를 만들고 허상에 초점을 맞추도록 유혹하여 결국 성도마저 예배 불능자로 전락시킨다. 포스트모던의 오만함은 진리의 목소리마저 소음으로 전락시킨다. 죽을 수 없는 신은 죽을 수 있는 인간을 부러워한다고 억지를 부리며 영생의 약속마저 조롱한다. 좋은 것을 나쁜 것이라 부르고 나쁜 것을 좋은 것이라 부르는 문화는 이미 막장에 도달한 것이다.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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