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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비명과 신음도 찬양의 재료다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7/04/11

백부장과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대답을 잘 함으로서 큰 복을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서 놓임을 받는 것과 함께 믿음이 크다는 칭찬까지 받은 것이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자랑스럽게 예수님께 나왔으나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들의 모든 행위 속에 창조의 목적이신 찬양의 심지가 빠져있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진리와 천국의 맥락을 제대로 짚는 자들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다윗을 지극히 사랑하신 이유도 동일하다. 헛다리짚으면 헛수고로 끝난다. 일생을 걸고 지탱한 신앙생활의 끝부분이 천국에 닿지 않는다면 그건 큰 낭패다.

광대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디테일은 무엇인가? 성경과 신학은 줄기차게 그 포인트를 짚어주지만 종교인들과 교회는 짐짓 딴 마음을 품는다. 세상에 길들여진 마음을 단절하지 않고 그 연장선에 종교의 제단을 세우려 하는 자들은 끝 날에 크게 어긋남을 보게 될 것이다. 공로의식과 자기 의는 자아숭배의 또 다른 얼굴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그분을 자신의 배경으로 제한하려는 시도는 불신앙과 진배없다. 구원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진리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바울은 전 생애를 걸었다.

언젠가 TV에서 이문세와 여중생이 듀엣을 하는 것을 보았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과 소리를 맞춰 가는 모습 속에서 나는 강렬한 에로스를 보았다. 다른 그 어떤 행위로써 그 순간 두 사람이 나누는 교감과 감동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다윗이 고난의 현장에서 쏘아 올렸던 위대한 찬양이 바로 그런 것이다. 보도블록의 틈새를 뚫고 올라오는 잡초처럼 생명을 품고 터져오르는 찬양은 막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나를 위해 하실 일을 기대하며 그분의 영광과 성품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그 이상의 즐거움은 우주에 없다. 찬양이야말로 최고의 향락이요 쾌락이다. 고통을 잊게 하고 공허를 채워주며 불안에서 확신으로 도약하도록 만들어 주는 위대한 감동의 원천이다.

시작이 무엇이든 언제나 결론은 찬양이어야 한다. 나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살든지 죽든지 찬양하리라. 그렇게 정리된 성도를 사단은 누르지 못 하고 흔들지 못 한다. 땀구멍을 통하여 감사의 진액이 흘러나오는 사람은 온 몸에 기름칠을 한 씨름선수처럼 사단의 손이 움켜잡을 도리가 없다. 하루에 한번쯤은 백부장과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과 대화해 보자.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살짝 놀라실 만큼 의외적인 감사와 찬양을 표현해보자. 그렇게 하려면 의식적으로 시인의 마음을 추구해야 한다. 습관적인 관점을 파괴하고 표피를 뚫고 진리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한 줄의 시어는 오랜 시간 걸러내고 압축하고 숙성시킴으로 탄생한다. 펑퍼짐하고 세속적인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과의 대화가 가능할까? 선물이나 건네주고 말없이 사라지는 하나님을 원한다면 생긴 대로 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의 영적 듀엣을 소망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존재로 도약해야 한다. 두 삶이 진정한 짝쿵이 되려면 수많은 개념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그 일치는 오랜 사귐과 참된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좋은 친구나 부부는 눈빛만 보아도 다 안다. ‘내 말 뜻은 그게 아니고’ 이런 식이라면 아직 멀었다.

한 트럭의 흙더미에서 한 조각의 다이아몬드를 찾듯이 참된 찬양을 중심에 품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주님은 내가 그 사람이기를 바라신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생각과 말을 하며 살기를 원했다. 바로 그것이 황소를 드림보다 더 귀한 예물이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대가 준비 되고 회중이 집중할 때 한판 눈싸움을 벌인 뒤에 찬양을 시작하지 않았다. 삶을 표현하는 모든 방식이 자연스럽게 찬양으로 이어졌다. 그의 찬양은 시도 때고 없었고 장소와 상황의 구애도 받지 않았다. 다윗은 비명과 신음도 찬양의 재료로 사용할 줄 알았다. 오죽하면 주님이 꺽으신 뼈들이 즐거워한다고 말했을까? 사랑하는 연인이 사정없이 꼬집으면 아프지만 감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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