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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바울이 화났다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7/03/25

[행17: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동안 첨단도시 아덴을 기웃거리며 오랜만에 찾아온 망중한을 좀 즐길 것이지 바울은 그새를 못 참고 사도의 기질이 발동하고 만다. 성화 된 눈에는 하나님께 불경한 것들이 그냥 보아 넘겨지지 않는 법이다. ‘저런 걸 보면 나는 화를 내야 돼’ 이런 의도적 차원이 아니라 ‘왜 자꾸 화가 나지? 아 내가 이런 곳에 와 있어서 그렇구나’ 성도라면 이런 본능적 차원이 되어야 한다.아덴을 바라보던 바울의 심정을 우리도 공감해야 한다. 그의 감정은 안타까움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였다. 바울이 격분한 이유는 주민들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우상의 배후에서 진리를 조롱하는 사단의 오만에 대한 저항감이었다. 바울은 당장 우상들을 다 때려부수고 예리한 비난을 퍼붓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숨을 고르고 차근차근 그들의 공허한 논리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알지 못하는 신을 내가 알게 하리라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신다
우리는 부지중에 그의 은총을 힘입어 살고 있다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으라
화려한 도시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가진 자들의 여유로운 웃음은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재물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고 잔치가 끝나면 다시 파티로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뚝 솟은 빌딩마다 맘몬의 제단이 차려지고 그 안에서 어떤 종교보다 강력한 제의가 진행된다. 무리들은 환호하기도 하고 신음하기도 하면서 서서히 신종 노예로 길들여져 간다. 어쩌면 그들의 목 뒤에는 하나같이 태엽을 감는 손잡이가 달려 있을지 모른다. 숭배와 찬미는 위장을 충분히 채운 자들이 갈구하는 다음 먹거리다. 힘을 집중 시키려 하는 조직은 언제나 바이블을 패러디 한다. 북한정권이 그렇고 재벌이 그렇다. 하나님과 진리와 천국의 이미지를 골격으로 삼아 얼기설기 우스꽝스러운 장막을 지어나간다. 몇 장의 천국행 티켓을 높이 들고 흔들면 단순한 군상들은 팝콘처럼 스스로 터진다. 그 안에서 지배자들은 헤롯처럼 뻥을 치다가 어느날 벌레에 먹혀 죽는다. 교만을 먹고 사는 벌레는 타락한 문화 속에 바퀴벌레 보다 흔하다. 
크리스천은 날마다 선택의 기로에 선다. 저 우상의 축제에 나도 들어가 함께 뛸 것인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진리의 편에 설 것인가. 유대인들은 출교를 죽음처럼 두려워했다. 고대근동에 살면서 공동체로부터 분리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가 바로 이어진다. 제 마음대로 자유를 선언하고 고독을 자처하는 것도 문명의 울타리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손을 뻗으면 아무 때나 먹을 것에 닿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지 100년 밖에 안 되었다.
자본주의 열차에 오르지 못한 자들은 난간에 매달리거나 지붕 위에 올라타서라도 함께 가려고 몸부림친다. 마치 6.25 피난 열차 같다. 꼭 잡아. 떨어지면 죽는 거야. 딴 생각하지 말고 묻어가. 모든 아버지들은 이런 말로 자식을 세뇌한다.

좁은 문 좁은 길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은 타협하는 신앙을 불편하게 만든다. 누구나 한 손의 떡보다 양손의 떡을 좋아한다. 그러니 두 손을 비워 주님만을 붙들라는 말이 통할 리가 없다. 진리의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본다는 것은 지적 수준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은혜일뿐이다. 눈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눈을 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가끔씩 들려오는 성공과 대박 스토리는 우상문화의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거의 다 명치가 움찔하면서 마른 침을 삼키게 된다. 심지어 손발이 덜덜 떨리기도 한다. 맘몬의 종들은 대중으로 하여금 넋을 놓게 만드는 것들을 고안하기 위해 오늘도 밤을 새워 회의를 한다.

사단은 필사적으로 마음이 영원을 향해 확장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시야가 열리면 질문이 생기고 질문이 생기면 답을 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기들에겐 답이 없다. 사단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들로 우리의 시선을 훔친다. 몽롱한 것을 좋아하게 만들어 또렷한 진리를 혐오하게 만든다.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은 뻔한 장난감 몇 가지로 지루함을 달래다가 ‘인생 뭐 있어?’ 라고 자조하며 나름 멋을 부리면서 죽는다. 비싼 수의를 입고 비싼 관에 누워 비싼 비석을 세웠지만 그의 잠자리가 편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리석은 사울 왕처럼 추락하는 순간에도 폼을 잡는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태도가 습관화 되면 영혼의 날개가 축 늘어져 버린다. 하늘에 어울리는 자가 땅에서 기는 것은 볼썽사납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존귀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은 소모품이다. 휴지와 라면을 장식장에 넣고 감상하는 사람은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하나님께 매혹 된 마음으로 일어나야 한다. 감사하기로 작정하면 감사의 이유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자는 준비동작 없이 바로 찬양으로 진입한다. 아기가 제때 먹어 주지 않아서 부푼 엄마의 유방처럼 뽀얀 감사를 줄줄 흘리며 사는 것이 성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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