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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유통기한 없는 러브스토리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6/12/14

소설가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에는 쌍둥이로 태어나 전혀 다른 인생길을 가는 두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치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서 하나는 두만강이 되고 하나는 압록강이 되는 것처럼 두 여인의 출발은 동일하였지만 그 결과는 극과 극으로 나뉘어 집니다. 작가는 두 여인의 태어난 날과 결혼하는 날을 만우절인 4월 1일로 설정을 했습니다. 이런 극적인 장치를 통해서 독자는 일찌감치 인생의 거짓말 같은 의외성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언니는 못난 남자와 결혼을 해서 온갖 풍파를 다 겪으며 삽니다. 무능하고 폭력적인 남편의 술주정과 손찌검과 가출만으로도 삶이 견디기 힘들 지경인데 거기에 하나 있는 아들까지 조폭 두목을 꿈꾸며 가정을 바람 잘 날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쌍둥이 동생은 그야말로 비단보자기에 싸여서 금 방석에 앉는 결혼을 합니다. 잘 나가는 건축사 남편을 만나서 강남의 부유층들이 사는 청담동이라는 동네에 궁전 같은 집을 짓고 여왕처럼 삽니다. 기념일이면 호텔에 있는 프랑스 식당으로 식사를 나가고 남편은 아내에게 어김없이 보석을 선물합니다. 두 아이조차 소위 엄친아 엄친딸이어서 속도 썩이지 않고 공부도 잘해 미국에 유학을 나가 좋은 소식만 전해 줍니다.

반면에 무능한 남편을 만난 언니는 시장에 좌판을 벌이고 양말과 속옷을 팝니다. 고생고생 하여 몇 푼 비상금을 만들면 남편은 바람같이 돌아와 귀신같이 그 돈을 찾아 또 집을 나가 한동안 소식조차 없습니다. 남편의 가출이 처음에는 며칠, 그 다음에는 몇 달, 결국 몇 년째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사고뭉치 아들은 여자 문제로 다른 조폭 두목을 때려서 살인미수 혐의로 교도소에 가고 그 어머니는 벌어먹기도 힘든 중에 아들의 옥바라지까지 합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집을 나갔던 남편이 몇 년 만에 갑자기 돌아왔는데 그 모양이 가관입니다. 중풍에 치매까지 걸려서 희한한 몰골로 돌아와 무작정 안방에 누워버립니다. 쌍둥이의 언니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신세를 한탄하며 원 없이 울고 그 다음에는 다시 기운을 내어 문제와 씨름하는 현실적 성격의 여자입니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문제 많은 일상을 도대체 어디에서 솟아나는 힘인지 알 수 없는 열정으로 뜨겁게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이쯤 되면 이 여인의 삶은 지옥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 반대, 저 강남의 청담동에는 천국의 햇살을 혼자 누리는 팔자 좋은 동생이 낭만을 구가하며 살고 있습니다. 남편도 완벽하고 자녀도 완벽합니다. 돈 걱정일랑은 결혼 이후에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어느 날 언니의 딸인 조카에게 대문과 안방 두 개의 열쇠와 함께 편지를 보냅니다.
“이 소포가 네게 닿을 때쯤에는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야. 이런 일을 너에게 시켜서 미안하다. 네가 제일 먼저 나의 죽음을 보게 될 거야. 혹시 내 모습이 흉하면 네가 좀 다듬어주지 않겠니? 남들은 나를 행복한 여자라고 불렀지만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하고 남편과 아들 때문에 불에 덴 사람처럼 뛰어다녀야 하는 언니가 그동안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 하고 이렇게 먼저 간다. 미안해. 미안해.”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소설의 제목은 모순입니다. 지옥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여인의 치열한 생명력과 나른한 무풍지대에서 맴도는 여인의 답이 없는 무기력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여성 세미나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는 것이 재미없고 무기력하고 우울하면 운전을 하고 가다가 앞 차를 그냥 들이 받으라구요. 그 순간 살아있음이 진하게 느껴지고 늘어진 빨래줄 처럼 땅에 닿도록 쳐져있던 마음은 갑자기 탄력을 얻을 것이라구요. 물론 정말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접촉사고처럼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쳐들어오는 문제와 고난을 지레 두려워하고 뒷걸음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씀이 가슴으로 이해가 될 무렵이 되면 우리는 상당히 높은 은혜의 봉우리에 올라온 것입니다.

성경은 온통 하나님이 휘저으시고 뒤흔드시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말씀은 진정한 행복에 대한 정의를 세상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혼돈을 느끼고 갈등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집요하게 우리를 설득합니다. 부귀영화와 무병장수와 무사안일의 삼박자를 울리며 우리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유혹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기도 제목도 그런 것을 구하는 것으로 넘치게 되죠.

그 소설을 읽고 아내에게 넌지시 두 여인의 삶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정말? 그거 실화야?] 하고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아니 소설이야] 그랬더니 아내는 실소를 하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소설이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그럴 리가 있나?] 아내의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규정한 행복의 조건이 다 집중되어 있는 여자가 왜 죽을 생각을 하느냐고 되묻는 것은 상식이고 인지상정이니까요. 그런데 며칠 뒤에 아내가 이런 말을 저에게 해 주었습니다. [전에 산악회에서 잠깐 알던 아줌만데 집도 잘 살고 별 문제도 없는 여자가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했대. 왜 그랬을까?] 저는 소설을 이야기 했지만 아내가 하는 이야기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던 아내의 실소는 그럴 수도 있는 현실로 되돌아 왔습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 두 건의 초상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한 분은 99세, 또 한 분은 95세였습니다. 이젠 그 정도 연세는 화젯거리도 못 됩니다. 현대인은 아무런 경험과 준비도 없이 수명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초 고령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엄청난 권태와 불안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로 정신에 최면을 걸며 잠시 버티고 있지만 그 감각적인 자극도 곧 힘을 잃을 것입니다. 그 뒤에는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야 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처방은 하나뿐입니다. 날마다 다시 주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 유통기한이 없는 영원한 러브스토리에 온몸과 마음을 푹 담그고 사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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