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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블랙으로 마시는 은혜 한 잔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6/11/30


크리스천에게도 일상 속에 크고 작은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건전한 즐거움을 누리는 기술은 성도의 삶을 더욱 견고하게 지지해 줍니다. 즐거움은 감각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잘 통하는 사람들, 맛있는 음식 그리고 예쁜 물건이나 아름다운 풍경 또는 좋은 날씨와 적당한 기온 등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각 사람마다 신앙관이 틀리듯 감각의 허용치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겠지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잠간의 쾌락을 위하여 너무나 어리석고 위험한 선택을 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실행에 옮깁니다. 자기를 바라보는 거룩한 눈동자를 알지 못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일탈적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남자가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담배를 전혀 경험해 보지 못 한 성도님은 그 맛이 참 궁금할 것입니다. 화면에 광란의 무도장 장면이 나오고 그 공간에 모여서 지옥불이 뜨거워서 길길이 뛰는 듯한 모습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면 저런 몸짓이 과연 행복에 어떤 도움을 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술과 담배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절제된 자세를 보여줍니다. 가끔은 성찬식의 작은 포도주잔에도 취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마음 놓고 술을 마시고 취하기에는 우리가 속한 신앙문화가 그 사실을 그리 편하게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술에 비하면 담배는 더 심하죠. 영적으로는 신실한 성도이면서 아직 담배를 끊지 못 한 분들은 나름대로 마음고생이 심합니다. 본인은 아무도 모르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담배 냄새에 무척 민감합니다. 담배에 인이 박히면 연기를 마심으로써 즐거움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일정시간 니코틴을 받아들이지 못 함으로써 발생하는 금단현상을 벗어나기 위해서 다급하게 담배를 피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담배란 피워서 즐거운 물건이라기보다는 안 피우면 괴로운 물건이라는 설명이 맞을 것입니다. 담배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은 담배의 미학에 대하여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들이 있겠지만 처음부터 담배에 손을 대지 않고 다른 즐거움을 개발했다면 그런 고통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도 한 가지 포기할 수 없는 감각적 즐거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커피입니다. 전문적인 바리스타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오래 전부터 커피를 즐겨온 개인적인 역사를 통해서 맛과 향취에 어느 정도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만일 크리스천에게 커피마저 금단의 영역이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요? 저는 하루 석 잔은 꼭 마시는 사람이다 보니 매스컴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커피와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기사를 만나면 눈여겨보게 됩니다. 커피는 기독교인인 제가 그래도 편한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보니 커피가 몸에 긍정적이라는 뉴스에 애써 눈길을 주고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는 편입니다.

세상에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나쁘기 만 한 것도 없습니다. 뭐든지 과도하면 다 부정적인 측면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커피도 적당히 마신다는 전제로 들여다보면 꽤 쓸만한 측면이 많이 발견됩니다. 커피를 마시면 학생들의 집중력이 증진되고 노인들은 인지력과 추리력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리기 힘든 아침이나 나사가 풀리는 오후의 커피 한 잔은 오아시스와도 같죠. 또 카페인에는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효능이 있어서 천식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자살률도 낮게 나온다고 하네요.

그렇다고 당장 믹스 커피를 뜯지는 마십시오. 저렴하고 편리하게 마실 수 있는 믹스 커피 한잔에는 커피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커피 자체는 이로운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커피를 맛있게 만들기 위하여 첨가되는 설탕이나 프림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신이 멍해지거나 컨디션이 저하 될 때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것은 카페인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달착지근한 설탕 맛이 그리운 거라고 하네요. 그러므로 [나는 커피를 즐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대부분은 [나는 단맛을 즐긴다]라고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커피를 주제로 이어온 이야기를 조금 다른 측면으로 전개해보고자 합니다. 커피만 들어있는 블랙커피는 쓰고 맛이 없어서 마시지 못 하고 이런저런 이름의 온갖 향신료와 설탕이 가미되어 거품이 듬뿍 올라가 있는 커피만 즐겼다면 진정한 커피애호가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과 교회라는 본질보다 그 주변을 장식하는 무드와 분위기를 즐겨온 것이라면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 할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시는 주님 앞에 당당히 대답할 수 없었던 베드로처럼 말이죠.

바나나와 바나나 맛이 다르듯이 은혜와 은혜로움은 다른 것입니다. 은혜 안에는 반드시 은혜로움이 들어 있지만 은혜로움 안에는 은혜가 들어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생동안 변함없이 가슴에 불이 타고 온 몸이 주의 임재로 24시간 짜릿짜릿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기온이 변하고 사시사철 여러 번 계절이 변하듯이 은혜의 물결은 우리는 싣고 오르락내리락 물결처럼 흘러갑니다. 은혜의 커피가 거친 그릇에 담겨올 때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설탕이 들어있지 않고 탐스럽게 하얀 거품이 덮여 있지 않아도 놀라지 마십시오. 은혜 체험을 황홀감과 연결시키는 사람은 감각의 통로로 비진리가 스며들기도 쉽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적인 이미지가 주는 거짓된 감각에 속아서 살다보면 설탕 맛을 좋아하면서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은 비슷한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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