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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보화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6/09/11

산상수훈의 언덕에 오르신 예수님이 당신의 주변에 모여든 무리들에게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씀은 종교적인 선언도 아니고 정치적인 구호도 아닌 마음에 대한 단순한 정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들려올 때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주님이 눈치를 채시고 그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메시지로 급히 바꾸셔야 했을까요?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하셨으나 사람에게 휘둘리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야구장의 응원단장이나 선거철의 국회의원 후보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출발한 그 말씀은 우주를 울리고 영원을 울리고 오늘 우리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한 깊음과 힘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최초의 그 한 마디.
요즈음 여러분은 산상수훈의 언덕에 올라 그 한 마디에 자주 귀를 기울이십니까? 아이가 시험을 보고 자랑스레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묻습니다. 너 말고 백점이 몇 명 더 있냐구요. 이런 문화 속에서 심령의 가난은 영적인 사치 아니면 구도자들의 호사로 치부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한 마디가 주는 긴장 속으로 자주 돌아가야 합니다. 책을 보아도 최초의 한 문장에 중심 주제와 전체적인 개요와 결론의 예고편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심령의 가난’은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줄기차게 강조될 메시지이고 모든 것을 측정할 계량도구이며 모든 것은 담아낼 영적 바구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모든 갈등들과 이방인들이 겪고 있는 불안의 문제들은 이 한 문장을 가볍게 여기고 건너뛰는 것에서 오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심령의 가난이라는 주제는 신앙인이 일평생 가슴에 품고 가야할 보석 같은 핵심 개념입니다. 그 보석을 잃어버릴 때 이미 가진 것이 무의미해 지거나 문제의 원인으로 변하고 그 보석을 갈 간직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못 해도 하늘과 땅을 양 손에 잡은 우주적인 재벌의 풍요로움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심령의 가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영원한 부요함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신비요 숙제입니다. 어느 마음이 가난한 목사님이 [밥 먹는 자식에게]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썼습니다.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 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일부러 멋을 부린 문장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고상하게 보이기 위하여 의미를 감춘 시도 아닙니다. 인생에 대하여 진실한 자세를 가진 아버지들이 오늘 아침도 밥상에서 자식에게 툭 던졌을 법한 투박한 말투지만 읽는 사람에게 뜨끔한 느낌을 주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쌀이 없으면 밥을 지을 수 없고 천이 없으면 옷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감사가 없으면 행복을 생산할 수 없는 것이 우주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살을 빼기 위하여 적게 먹고 많이 걷는 자연적인 방법을 버리고 약물과 수술을 선택하는 버릇을 행복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소비문화의 엔진은 즉각적이며 자극적인 만족을 연료로 피스톤을 움직입니다. 한 마디로 행복과 만족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또 다른 세상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3억 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10억 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와서 1억 원짜리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별 시답지 않은 인간이 와서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일축할 지도 모릅니다.

시인 목사님은 밥상에서 자식에게 한 마디 하시지만 그 한 마디에는 오랜 세월 농익은 신앙과 하늘이 열리는 깨달음과 마음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민감성이 다 들어있습니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내 곁에 와 있는 선물과 축복의 깊은 배후를 더듬어 들어가면 그곳에 하나님의 신비와 섭리와 사랑이 고동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의 시동이 무엇으로 인하여 걸렸든지 결국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품에 가 닿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무한한 부피의 행복이 내면에서부터 차오르게 되는 것이죠. 그 행복은 세상에 구할 수 없는 ‘메이든 인 헤븐’ 천국표 행복입니다. 그런 마음의 상태에서는 유통기한이 짧은 피조물과 쾌락에서 눈을 돌려 유통기한이 영원한 하늘의 기쁨을 바라보게 됩니다.

손에 움켜쥔 것인 내 것이 아니라 감사 되어진 것만이 내 것입니다. 매 순간이 짜릿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인생이 드라마틱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지금 아무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를 대단하게 보이게 해 줄 어떤 소유물과 후광이 없어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신분과 명예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인사가 여덟 명의 경호원을 거느리고 걸어갈 때 우리는 이미 하늘의 군대로 호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비싼 술로 건배를 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손에는 영원한 생명의 포도주잔이 들려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이 내게 없다고 불평하지 마시고 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보화가 내 손에 있는 것으로 감격하십시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사용할 자격도 없고 사용할 감각도 없는 위대한 언어들을 한번 찾아볼까요?
‘부활, 대속, 구원, 기적, 섭리, 축복, 임재, 영원, 천국, 하늘 아버지, 나의 주님, 성령’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위대한 언어들의 목록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온 종일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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