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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의 시간표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6/06/01          첨부파일 : a0109823_4a299f925af22.jpg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까지 가야할 일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비행기지요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KTX가 제일입니다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처럼 운전을 즐기는 분은 자가용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갈 것이고 경제성을 생각하는 분은 고속버스 편을 선택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해서 어떤 청년이 부산에서 출발하여 서울까지 각 지역의 시내버스만을 이용하여 올라오는 시도를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은 시내버스만을 이용해서 하루에 갈 수 없다]라고 누군가 하는 말을 듣고 [왜 안 돼?]라는 도전의식이 생겨서 그런 모험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 청년은 도전에 성공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시내버스를 22번 갈아탔고 시간은 17시간 46분이 걸렸으며 비용은 총 34680원이 소요되었습니다.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바보짓이고 미친 짓이죠.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그 돈이면 고속버스를 타고도 남고 조금만 비용을 추가하면 KTX를 타고 올라올 수 있는데. 그러나 특별한 희열은 무모한 도전에 온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만이 맛 볼 수 있는 것이죠. 그

청년은 버스의 연결 편을 조사하기 위하여 며칠을 소비했고 나름대로 스케줄을 치밀하게 짰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버스의 연결이 끊길 뻔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여행은 버스의 연결이 효과적이지 못해서 부산을 출발하여 서울로 오는 여행으로 바꾸어야만 했습니다. 새벽 5시 30분 부산시 금정구 노포동을 출발한 그는 그날 밤 11시 16분 [이번 버스 정류소는 강남역 사거리, 강남역 사거리]라는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 청년의 몸과 마음은 파김치처럼 지쳐있었을까요? 아니면 마침내 해냈다는 기쁨에 기운이 펄펄 넘치고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후자일 확률이 높겠죠. 피로는 몸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라고 학자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빠르고 편리한 것이 우상이 되어버린 현대문화 속에서 이렇게 느림을 선택하고 속도보다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뜻밖의 선물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 위안이 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무엇이 정답인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미 중독이 되어버린 스피드와 업그레이드와 무한경쟁의 아드레날린 성 쾌감을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애굽을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여정의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기적을 목격한 날, 전쟁에서 이긴 날은 흥분과 광기로 가득하여 모두가 길길이 뛰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날보다 무덤덤한 날들이 더 많은 그 긴 세월동안 백성들은 영적인 긴장이 풀리고 몸과 마음이 모래알처럼 바닥에 쏟아져 내렸을 것입니다.

아침마다 만나를 거두면서 처음에는 놀라워하고 감사도 했지만 그것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에 감격을 잃어버렸고 홍해의 기적을 보며 불렀던 생생한 찬송들은 시간 속에 점점 빛이 바랬습니다. 눈을 들어 뭔가 있나 바라보면 막막한 지평선과 푸른 하늘뿐이었습니다. 비록 종살이였지만 애굽에서 보았던 경이롭고 황홀한 건물들과 상징들은 눈을 씻고 바라보아도 찾을 수 없는 텅 빈 광야에서 그들은 심각한 권태에 빠져들어 갑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그 지루한 여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했던 것일까요? 레위기는 18장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그 긴 여정을 통해 뼛속까지 파고든 애굽의 문화를 지우고 계셨고 뼛속까지 파고들 가나안의 문화를 경고하고 계셨습니다. 아무것도 주목하거나 의지할 형상이 없는 광야에서 의도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속에 의지와 정서의 여백을 만드시고 그 자리에 당신이 좌정하시기 위하여 길고 지루한 작업을 이어오신 것입니다. 가나안까지 빨리 가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순간이동을 통해 백성들을 옮겨놓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실제로 성경 속에는 여러 곳에 순간이동이 등장합니다. 새 땅을 정복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한 호흡에 이방인들을 쓸어버리시고 자녀들을 무혈 입성시킬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의 성장이란 그렇게 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 만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으시나요? 하루 종일 마음속에서 조바심과 짜증이 떠나지를 않으시나요? 현대인이 답답해하는 것은 결과보다는 타이밍 때문입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면 결국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축복의 그림을 보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느긋하신 시간표를 참아내지 못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응답주심에 대한 의지적인 동의입니다. 믿음은 막연하게 어른거리는 든든한 느낌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의지의 반복적인 갱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나의 리듬에 끌어들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하나님의 리듬에 녹여 넣습니다.

시내버스만으로 부산과 서울을 연결한 청년이 경험했을 느림 속에 숨어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차창밖에 펼쳐지는 질박한 시골 풍경들. 멀리서 걸어오는 할머니를 기다리기 위하여 한참을 서 있는 시골버스들.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냄새들. 그리고 고생 끝에 솟아나는 뜨거운 환호성.

오늘은 하나님에게 시간을 좀 드리시면 어떨까요? 마침내 해 내실 하나님을 전체적으로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리듬을 따라 느긋한 천상의 춤을 추면서 말입니다. 어디선가 기계처럼 소리를 내고 있는 아이돌 가수들의 숨 가쁜 노래가 들려오면 왜 세상이 이렇게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 영적인 질문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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