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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내려놓는 게 뭐예요?
글쓴이 : 김민식                   등록일 : 2016/04/26

어느 교회에서 찬양집회를 하던 중에 알게 된 여성 디자이너 한 분이 계십니다. 열정과 예술성으로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세운 사람답게 그 분에게서는 강력한 자신감과 자기표현이 느껴졌습니다. 먼 나라 미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패션문화의 한 가운데에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그 분을 만났을 때, 그 분은 큰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행사는 그 분이 가진 모든 역량과 자원과 꿈이 요구되는 일생일대의 빅 이벤트였습니다. 패션쇼는 두세 시간 만에 불꽃처럼 타올랐다 꺼지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많은 준비사항과 점검사항들이 있습니다.

무대에서 보여줄 의상을 디자인하는 일만도 엄청난 일일 텐데 제가 보는 그 분은 그 일만이 아니라 수 십 가지의 당면문제를 온몸으로 해결하며 전쟁처럼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제가 가진 은사로 그 분의 행사의 일부분을 도와드리게 되었고 수시로 통화하며 힘겨운 순간에 위로를 나누어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금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고 경제도 깊은 곳에서부터 곪아있어서 이런 화려한 쇼를 치르기에는 분위기가 좋은 편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기대했던 지원과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도 수많은 패션쇼를 기획했던 분이시지만 그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어려움과 장애물에 직면하시면서 기운이 빠지고 낙심되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저와 통화를 하는 중에 비록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믿음 안에서 의지가 되셨는지 세세한 어려움들을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예상치 못 했던 어려움들이 이렇게 많이 발생 하는 거죠? 제가 뭘 잘 못 한 것일까요?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면 이렇게 어려울 리가 없는 거잖아요] 누군가 이런 심정일 때 그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럴 때 뭐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모범 답안지 같은 대답을 해 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으세요.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으세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보다 좋은 위로와 권면이 없지만 막상 어려움의 한 가운데 사로 잡혀있는 사람에겐 자칫하면 위로는커녕 약을 올리는 소리로 들릴 위험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의 말에 그 분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라구요? 어떻게 내려 놓는거죠?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에요?] 물론 그 분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서 되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목을 조여 오는 다급한 상황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선문 선답 같은 말밖에 해 줄 수 없는 제가 더 안타까웠습니다. 그 분의 반문에 답을 하기 전에 저는 순간적으로 저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가난과 부모님의 연이은 죽음. 혈액형 A형답게 소심하고 세심한 제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과 문제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실망. 저는 그런 순간들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는 위로의 손길을 갈망했고 시간이 꿈같이 흘러 그 사건이 감사의 탁자에 새로운 모양으로 펼쳐져 있을 미래를 상상하곤 했습니다. 다윗이 노래했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저에게도 여러 번 있었죠. 그 때마다 하나님은 상상도 하지 못 했던 방법으로 저를 건져 주시거나 이전보다 더 밝아진 감사의 눈으로 그 결과 속에서 하나님을 선물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열어주셨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뭐가 제일 두려우세요? 혹시 선생님의 완벽성에 흠집이 날까봐 걱정이 되시는 건가요?]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런 부분도 있기는 있죠] 저는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다는 것은 과정과 결과에 대한 나의 통제환상을 포기하고 어떤 결과에도 감사할 마음의 그릇을 미리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그 날은 올 것이고 행사는 예정대로 치러질 것이고 그 자리에 함께 한 분들은 큰 박수를 남기고 모두 떠날 것입니다. 몇 가지 꼬이고 엉킨 부분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선생님의 눈에만 띄는 것이지 관객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 할 겁니다. 기도하며 준비한 행사잖아요. 그날 밤 열시쯤이면 기막히게 동행하신 하나님에게 할렐루야를 외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평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세요]

홈쇼핑에서 카메라를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에 그립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립감이란 제품이 손아귀에 잡히는 느낌입니다. 대상과 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접촉적 느낌은 제품의 품질과 함께 고객을 유혹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햄버거 회사에서는 얼마나 두꺼울 때 고객들이 한입 베어 무는 느낌이 가장 좋은지도 연구한다고 합니다. 다정한 연인들의 손이 사랑 가득히 겹쳐질 때 그립감이 참 좋죠. 갓난아기를 품에 꼭 안는 느낌도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느낌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작은 하나님으로 여기는 착각에 빠져있습니다. 내 인생을 내 손아귀에 꼭 잡고 싶어 합니다. 구원의 첫 페이지는 자기중심적 그립감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내 맘대로 되기보다는 주 맘대로 되시기를 바라는 차원까지 이르면 긴장과 불안은 사라지고 현재와 영원을 포함하여 한 눈에 바라보는 영적 조망의 행복이 열립니다.

내 삶의 여정 끝에 두 팔을 벌리신 주님과 황금빛 천국이 있음을 바라보며 넉넉한 관용과 여유로 현재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숨소리가 편안해야 합니다. 잔잔한 호흡의 리듬이 너무 쉽게 깨지는 것은 아직도 나의 중심에 하나님 보다는 세상의 무게가 더 크게 실려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보고 Nothing이라고 말 하는 자들은 세상을 보고 Everything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Everything이라고 말 하는 성도들은 세상을 보고 Nothing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하여 무기력하고 무책임하자는 말이 아니라 세상이 나의 마음을 틀어쥐고 왕 노릇 할 빌미를 주지 말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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